야밤에 군 복무시절 귀신 본 썰 하나 풀고 자려고 합니다.
저희부대는 군지사 정비부대였고 막사는 신막사여서 시설은 꽤나 좋았는데, 2000년대에 막사만 새로 짓고 나머지 시설은 꽤나 낙후되어있는 부대였습니다. 치장창고 정리하다가 20년 전 주기표랑 일기 같은 것이 나와서 행보관께 물어보니 창고들이 구 생활관 이더군요.
무튼 막론하고, 제가 이등병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야간근무시, 짬찌라서 불침번이 살짝만 깨워도 번쩍 일어나 자비스없이도 아이언맨 수트입는 속도로 환복을 하죠.
그 날도 어김없이 긴장상태로 수면을 취하고 있었을겁니다. 누군가 저를 쿡쿡 찌릅니다.
보통 다음번초를 깨울때 에지간하면 불러서 깨우고 안 먹힐시, 툭툭 치거나 흔들어 깨우는데, 누가 처음부터 쿡쿡 찌릅니다.
보니까 침대옆에 쪼그려앉아서 누워있는 저와 눈높이를 맞추고 쿡쿡 찌르는 겁니다.
누군지 확인 할 틈도없이 번개처럼 일어나 환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화를 꺼내러 생활관 복도로 나갔는데, 생각해보니 비번 날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몸이 반응해서 환복한 거였습니다.
불침번들에게 다가가서
"아저씨 저 근무 아닌데... 왜 깨우셨어요?"
하니 불침번 아저씨가
"안깨웠는데요? ㅡㅡ"
이러는겁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상한 꿈을 꿨거나, 너무 긴장하고 자서 뻘짓했나보다 싶어 별 생각 안하고 다시 들어가 잤습니다.
그런데 그 날부터 몇 번씩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겁니다.
목덜미쪽을 쿡쿡 눌러서 깨우면, 전 일어나서 환복을 하고 전투화 꺼내러 나갔다가 꼭 그때 비번인 걸 깨닫습니다.
반복되는 일인 걸 인지하고, '꼭 누군지 봐야지' 하고 자도 막상 일이 닥치면, 새까맣게 잊고 마치 뭐에 홀린듯이 환복을 합니다.
그래서 거의 열번가까이 반복 된 일 임에도, 깨우는 존재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참다 참다 선임들한테 말하니 몽유병이라고 놀리고, 나도 니 새벽에 뛰어나가는 소리에 깼다고 짜증내는 선임도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진짜 멘탈 많이 약해졌나보다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곧 짬이 차면서 침대자리 이동을 하게되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잊혀져 갔습니다.
신막사 생활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런 식의 구조이고 저희는 왼쪽 맨아래 자리가 분대장, 그 다음 자리부터는 시계방향으로 짬순으로 썼습니다. 제가 그 일을 겪었던 자리는 왼쪽 아래에서 두번째 입니다.
그로부터 일년 남짓이 지나고 제 자리는 바로 맞은편인 오른쪽 아래에서 두번째 자리가 됩미다. 생활관에서 3고 자리죠.
진짜 그 일 까맣게 잊고 짬차는 즐거움에 젖어있었습니다. 그 쯤 되어 짬이 잘 풀려 당직상황병을 섰기때문에 새벽근무도 안 서게 되었죠.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고 있던 때
얼마 전 들어온 막내녀석이 자꾸 새벽에 누가 자기를 깨운답니다.
저는 코웃음을 치며
"이등병이 가진 특유의 병이다ㅋㅋ 수두처럼 한 번은 앓아야 돼"
하며 약간 비아냥 섞인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막내의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잊혀질 무렵
새벽에 갑자기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습니다. 새벽에 깨서 반쯤 감긴 눈으로 보니 맞은편 자리의 막내가 탄띠까지 매며 허겁지겁 환복을 하고있는겁니다.
'저놈은 뭐 이리 환복을 바시락거리면서 해'
속으로 생각하머 다시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예전 기억이 스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후임 침대 옆을 바라보니(지금 쓰는데 허벅지에 소름이 확 돋네요)
한 여자가 후임 침대옆에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머리가 물에 흠뻑 젖어있는겁니다. 나이는 20대 중후반 쯤
그걸 보는 순간 소리를 치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고 몸도 안 움직입니다.
고개도 돌릴 수가 없었고 다시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그 여자가 저를 향해 고개를 서서히 돌리는데, 진짜 보기 싫은데 봐야만 하는겁니다.
근데 진짜 여기서 더 소름돋는 건 여자가 몸을 돌리니까 여자 옆에 한두살 난 여자애기가 같이 있는겁니다.
여자애기를 봤는데,
눈코입이 없고 얼굴전체가 피투성이 입니다.
눈코입이 있더라도 피로 범벅된 얼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짜 더 소름돋는건 막내놈이 아무것도 모르고 환복을 미친듯이 하고있다는거
그리고 막내가 전투화를 가지러 생활관을 나가니 모녀가 막내를 따라서 생활관 문 쪽으로 갑니다. 그러고 막내가 비번임을 깨닫고 다시 들어올 때, 귀신모녀와 막내가 교차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제 몸도 움직이고 가위같은 것이 풀렸는데, 그때 생활관 전우들 다 깨우고 아주 소리지르고 발칵 뒤집었습니다.
주임원사님이 새벽에 출근까지 하셨을 정도였으니까요.
저희어머니랑 통화까지 하시고, 저도 어머니랑 통화시켜주고 아주 별 쌩쇼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주임원사님이 절 개 또라이 보듯 하실 줄 알았는데 되게 덤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낮에 저 따로 부르셔서, 하시는 말씀이
"부대 순찰로 야간 당직 때 밖에 안 돌아봤지?"
사실 처음 당직 배울때나 돌아봤지 거의 돈 적도 없었지만
"네 야간에만 돌아봤습니다."
하고 대답했죠.
군필자 분들은 부대 영역이 생각보다 엄청 넓은거 아시죠?
휀스로 부대 전체가 둘러져 있는데 저희는 약간 산까지 걸쳐있어서 가볼 일 없는 장소도 꽤 있었습니다.
그 산쪽 까지 주임원사님이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어느정도 경사를 오르자 주임원사님이 손가락으로 무언가 가르키셨습니다.
"저 무덤 보이나?"
자세히 보니 부대 휀스 밖도 아니고 안쪽 한 마디로 부대 부지 내에 무덤이 있는겁니다.
그리고 자세히보니 바로 옆에 아주 조그맣게 또 무덤이 있었습니다. 누가봐도 아기무덤이었고, 큰 무덤 비석엔 제가 한자를 몰라서 거의 읽지 못했으나,
여자 녀 자랑, 편안할 안 자 이 두 한자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임원사님 말씀해주시기로
이십년 전에 여기 병사 중 한명이 외박 나가서 다방여자랑 눈이 맞았답니다.
그 병사가 휴가나가면 집에도 안가고 부대근처에서 그 여자랑만 있었을 정도로 미쳤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여자가 임신까지 했는데,
남자가 자기 전역하고 정식으로 결혼까지 하자고 해놓고, 전역후에 잠수를 탔답니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흐르고, 그 여자가 부대에 면회를 왔답니다. 저희 부대는 그냥 부대내에 간부식당에서 주말면회를 실시했기에,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마 병사 이름을 대야 면회가 이루어졌을텐데, 위병조장을 애초에 초임하사 스무살짜리가 하다보니 대충 대충 넘어갔나봅니다. 애도 있는 애엄만데..
그 애엄마는 애와 함께 부대 안에 있는 우물에 몸 던져 자살했다고 합니다.
(부대 안에 우물이 있었다는 건 저도 안 믿기고 본적도 없지만, 저도 들은 얘기입니다.)
그래서 부대에서 그 모녀 시신을 부대안에 묻어주고 매번 명절때마다 합동차례 지내고 남은 음식들로, 주요 간부들만 가서 위령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병사들은 모르고요.
그 위령제를 과거 대대장 한 분은 기독교 신자분이셔서 그냥 무시했는데,
부대에 사건사고가 엄청 터져서 어쩔수없이 위령제 지냈다고 합니다.
저는 귀신 믿지도 않았고, 공포영화 볼 때는 불 다 끄고 커텐치고 혼자 볼 만큼 겁도 없었는데, 전역 이후로 공포영화도 잘 못봅니다. 딸내미가 피투성이로 절 바라봤던 그 얼굴 아직도 생생하네요...
정준영 승리 사건 보면서 남자의 아랫도리 관리에 대해 상기되어, 8년이나 지난 썰을 풀어봤습니다. 안 믿으셔도 됩니다.. 무튼 진짜 남자들 조심해야합니다.
새벽에 재미없고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1군지사 93정비 출신 있으시면
무덤얘기 입증좀 해주세요 그 이후로 병사들 다 알게됐는데
댓글 작성 (0/1000)